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Pride Global Bridge

GPPS Pride GyeongBuk

April 2018 Vol 41


터키

‘터키다움’을 보여주는 술 문화

한국인들은 터키를 방문하면 보통 두 번 놀란다. 첫 번째로는 인구의 99%가 무슬림이라는 나라에서 히잡 착용이 자유롭고, 어디서나 남녀를 불문하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서 놀라고, 두 번째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의 호텔 또는 레스토랑에서 주류의 판매와 음주가 불가능하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놀라는 것이다. 그만큼 터키는 개방과 보수가 극과 극의 형태로 모두 공존하는 복잡한 사회이다.
그렇다면 터키에서는 정말 술을 먹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또 다른 반전이 있다. 무슬림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고, 극도로 금욕을 실천하는 라마단 기간 중에도 터키의 곳곳에서는 술자리가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고, 이를 불쾌하게 여기는 소수의 시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터키인들은 이러한 풍경을 의식하지 않고 지나친다.
사실 터키는 오스만 제국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700년 이상을 무슬림이 지배해 온 사회치고는 주류가 가장 발달한 나라라 할 수 있다. 한국에도 수입되고 있는 터키산 맥주 에페스(Efes)는 한국인들이 터키여행에서 기념품으로 가장 많이 사갈 정도로 그 맛을 인정받고 있고, 터키의 대표적인 민속주 라크(Raki) 또한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매거진, 책 등에 소개된 바 있다. 오랜 세월에 거쳐 와인 사업 또한 발달했다. 터키 식품관리청의 통계에 따르면, 2004년 이래 터키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주류 또한 터키내 생산량이 높은 맥주, 와인, 라크 순이었고, 수입 주류 중에서는 보드카의 소비량이 가장 높았다.
라크는 터키를 포함한 과거 오스만 제국에 의해 통치되었던 그리스와 발칸 반도 일대에서 발견된다. 라크는 포도주를 만들 때 걸러낸 포도 찌꺼기 또는 사탕무라 불리는 비트를 이용해 양조된 후 증류시키고, 이에 팔각 등의 향신료를 첨가해 재숙성 과정을 거친다. 지역마다 도수는 조금씩 다른데, 터키인들이 마시는 라크는 45도 전후이다. 높은 도수 탓에 터키인들은 이 술을 물에 5:5로 희석하여 마시는데, 투명했던 라크가 물과 섞이면 우윳빛이 나기 때문에 과거에는 “Aslan sutu", 직역하면 “사자의 젓”이라 불리기도 했단다.
와인의 경우, 터키는 지리적으로 와인 생산에 매우 적합하다. 흑해와 동부 아나톨리아의 북쪽 지역을 제외하고는 터키 전 지역에서 포도 생산이 가능하다. 실제로 포도 생산량이 굉장히 많은데, 그에 반해 전국에서 재배된 포도가 와인 생산에 사용되는 비율은 2%에 불과하다. 다른 국가들의 대표적인 포도 재배지에서는 약 70~95% 정도가 와인 생산에 사용되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광대한 포도밭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당연히 무슬림이 대부분이고, 더욱이 터키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나톨리아 지방에는 해안지역에 비해 신앙심이 두터운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수십 년을 포도밭과 와인 생산 공장에서 일했지만, 와인을 단 한 번도 맛보지 않은 이들이 태반이다. 이렇게 포도밭 하나만 봐도 터키가 개방성과 보수성을 얼마나 극적으로 껴안고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터키의 술문화는 어떨까? 차이가 있다면, 한국과 달리 청년들의 음주량은 크게 높지 않다. 술 자체가 비싼 것도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한국과 달리 대학 오리엔테이션, MT, 선후배나 동기간에 친목을 도보하는 자리 등에서 집단적으로 술을 먹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음주에 관해서는 정책적으로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여 온 터키 정부인만큼 대학가에 이러한 문화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터키에서 술자리는 개인적인 기념일인 생일이나 파티, 약혼식,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만들어진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결혼식에서 술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아무리 개방적인 터키라고 해도 이슬람을 바탕에 두고 형성된 전통에 따르면 결혼은 매우 성스럽고, 종교적인 의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주변 국가들에 비해 세속화가 상당히 일찍 그리고 빠른 속도로 진행된 터키이지만 여전히 결혼식에서는 이맘(무슬림들을 위한 종교적 지도자)이 주례를 보는 것을 매우 흔히 볼 수 있다.
한편, 앞서 언급한 것처럼 터키에서는 특정 음식점이나 호텔에서만 주류의 판매와 외부 반입이 금지되어 외국인 관광객들을 당황케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온전히 해당 사업장을 운영하는 오너의 종교적 신념에 관한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술은 정신을 흐리게 하여 실수를 범하게 하고,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피해를 주기 때문에 ‘하람(금지할 것)’으로 여겨지는데, 때문에 술을 통해 얻는 수익 또한 하람에 해당한다. 그러니 만약 한 사업장의 오너가 사업자로서의 자신보다 무슬림으로서의 자신에게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면 수익의 일정부분을 포기하고서라도 종교적 신념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술을 팔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 정설로 통하지만, 터키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만큼 복잡한 사회이다. 술을 팔지 않기 때문에 혹은 오너가 종교적으로 정직하기 때문에 해당 음식점 또는 호텔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러한 업체들을 활용하여 “할랄 관광”이 탄생하였고, 중동에서 온 무슬림 관광객로부터 엄청난 반응을 얻고 있다.
이 모든 풍경이 터키가 가지고 있는 역동성을 대변하는 것이다. 터키에는 어느 곳에나 매우 독실한, 스탠다드한, 전혀 신앙심이 없는 무슬림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누구도 술을 권하거나 강요할 수 없고,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안 된다. 음주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되, 그에 대한 책임감도 요구하는 것이 터키 사회이다. 술을 전혀 하지 않는 필자의 입장에서 이런 터키 사회는 그야말로 천국이라 할 수 있다. 터키에서는 단 한번도 “넌 왜 술을 안 마셔?”라는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고, 늦은 저녁에 술 취한 이를 본 것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이렇게 유연하고 역동적인 터키사회에 보수파인 현 에르도안 정권은 계속해서 제약을 시도하고 있다. 2014년 6월부터는 주류 상품의 로고 인쇄 및 부착 그리고 광고가 전면 금지되었고, 이를 어길 시 최소 270만원에서 최고 1억 2천여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 지난 해 4월부터는 터키에서 내·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안탈랴 지역에서 노천에서의 음주를 금지하는 주지사 행정명령이 내려졌다. 당연히 이러한 조치들은 주류시장에 큰 타격을 입혀 이후 대형 주류 공장이 폐쇄되기도 하고, 주류 판매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높은 지지율을 기반으로 한 현 정권의 파워가 워낙 세기에 업계에서는 이러한 정책들에 대해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류 판매와 금지 억제 정책을 전화위복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터키의 주류 업계들이 내수시장에서의 수익기대를 대폭 낮추고, 해외 시장을 공략할 기회를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 언론에서는 이스탄불에서 레코드샵을 운영하던 한인이 라마단 기간 중에 손님들과 음악을 틀고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어 많은 이들의 우려와 선입견을 낳았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터키 내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로, 터키인들은 1920년 공화국이 세속주의를 주창하며 설립된 이래 줄곧 개방과 보수 사이에서 균형 잡는 연습을 해온 사람들이다. 때문에 한 편에서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한 편에서는 라마단 금식 중인 이들이 오가는 터키만의 독특한 풍경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런 풍경이 터키를 가장 터키답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경북pride상품 터키 해외시장 조사원
엄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