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독일 문화 이야기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다가 독일로 이사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마드리드 아파트 주인에게 독일로 이사 간다고 했더니, “왜 매일 비오고 음침한 날씨에 냉정하고 인정머리 없는 독일로 이사가느냐”며섭섭한표정을 지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실제로 독일에 이사와서 아파트 임차계약을 할 때 보니 임대차계약서 외에 별도의 입주민 규약에 서명을 해야 했습니다. “저녁 10시 이후에는 샤워를 해서는 안되고 대변을 보고 물을 내려서도 안된다. 층간 소음방지를 위해 집안에서 애들이 뛰어서도 안된다. 된장국이나 생선 같이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을 해서도 안된다 등등” 이래서야 어떻게 사람이 살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하루에도 몇차례 주차벌금딱지를 받고 이웃에게 신고당할 때에는 독일사람들에게 정내미가 떨어지곤 했었습니다.
인구 400백만이 사는 스페인 마드리드 한 복판 대형 백화점 앞에 잠시 정차할 때의 일입니다. 혼잡속에 경찰이 쫓아와서 호각을 불며 차를 빨리 빼라고 야단인데, “내가 급해서 그러는데 5분만 정차를 할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딱 5분만”이라며 눈을 찡긋했던 걸 기억합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그렇게 인정많고 융통성이 있었는데 하면서 스페인을 그리워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을 독일에 살다가 늘 그리워하던 친정 스페인 마드리드 여행을 갔는데 그렇게 정답던 스페인어가 시끄럽게 들리고 무질서한 스페인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몇 년간 독일에 살면서 독일사람들의 질서정연함과 진지함에 익숙해졌고 정이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독일에 오래 살았던 어느 한국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선진국이 되어도 이태리 같은 선진국이 될지언정 독일 같은 선진국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그러니 딱히 어느 문화가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민족마다의 각기 다른 정서가 있고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그렇다고 독일사람들이 냉정하기만한 것은 아닙니다. 외딴 곳에서 자동차가 고장나서있으면 대부분의 독일사람들은 지나가다 서서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면 기꺼이 돕고, 도와줄 수 없는 일이면 경찰이나 서비스제공기관에 대신 연락을해줍니다. 낯선 한국식당에 와서 모르는 메뉴를 시켜 먹기가 거북할 때에도 “왜 입에 안맞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자기가 오늘은 입맛이 없어서 그런다고 합니다. 주문이 밀려서 1시간 이상 기다려도 불평을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식당에 와서 음식맛이 없다고 하면 다른 손님에게 영향을 주어 식당영업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염려함이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한 요리사에게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1990년10월3일 독일통일로 열광한 국민들이 느낀 감격도 잠깐, 엄청난 통일비용 및 후유증으로 독일 역시 유럽의 병자로 전락해가고 있었습니다. 국가는 동독의 무너진 인프라를 재건하고, 서독기업들은 문을 닫은 동독기업들을 인수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시설은 낡고 노동생산성이 낮아 제품의 경쟁력 부재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으며, 서독국민들은 동독국민들과 사회보장비용을 나누고 통일연대세까지 추가로 내야만 했으며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높아만 갔습니다. 이런 와중에 특히 동독주민들의 요구사항은 많아져 장기호황과 독일통일을 이룩한 헬무트 콜 수상이 이끄는 보수기민당 정권이 선거에 저 슈뢰더 수상이 이끄는 좌파 사회당 정부가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당 정부가 집권하여 인기영합정책을 수행하다보니 경제는 더 어려워졌고 실업률은 더 높아질 뿐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자동차산업 등 제조업이 쇠퇴하게 된 것도 기업들이 국민들의 높아져가는 임금인상 및 사회보장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좌파 노동당 정권이 집권하여 제3의 노선이니 하면서 중도좌파 정책을 수행했지만 기업들의 경쟁력을 회복하는데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슈뢰더 수상이 이끄는 독일 사회당은 달랐습니다. 기업들의 사회보장비용을 줄여주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주는 Agenda 2010 정책을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선거승리를 도모했지만 독일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해 재선에 실패하였고, 메르켈 수상이 이끄는 보수기민당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사회당 정부이었기에 노조를 설득하여 Agenda 2010정책을 비전으로 제시할 수 있었고, Agenda 2010을 사회당 정부가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집권에 성공한 메르켈의보수기민당정권이 어어받아 13년째 Agenda 2010 정책을 수행하여 유럽의 병자인 독일경제가 재도약을 하였고 10퍼센트에 육박하던 실업률도4퍼센트이하로 떨어져 현재 독일경제는 더 좋을 수가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히틀러가 선동했듯이 독일사람들이 우수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원 4세기경 훈족에 쫓겨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고 사냥과 약탈에 능하여 로마가 쇠약해진 틈을 타 서로마제국을 멸망시켰으나 문화를 모르는 산적들처럼 로마문화유적을 마구 때려부수었고 약탈을 자행하여 영어로 Bandalism(Bandal: 게르만의 일족이름)하면 문화파괴주의를 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럽으로 대이동을 한 이후 신성로마제국을 이룩하기도 하지만 수백년 동안 수십개의 소규모 영주국으로 분할되어 있었고 30년 신구교 종교전쟁으로 인구가 반감하였고, 영국.프랑스의 위세에 눌러 유럽에서는 2 – 3류 국가로 전전긍긍하다가 1871년북부변방 프러시아(독일 영주국의 하나)의 비스마르크가 통일을 하고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야 유럽 열강대열에 합류할 만큼 대단한 나라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1 – 2차 세계대전에 패배하면서 쑥대밭이 되었다가 특히 미국의 필요에 의해 마쌸 플랜 등으로 라인강의 기적을이룩한 저력있는 민족인 것 만큼은 틀림없지만 처음부터 대단한 민족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역사학자 토인비가“인류의 역사란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고 했듯이 게르만 민족은 원래 북유럽의 춥고 음습한 지역에 자리를 잡아 농사도 어렵고목축도 어렵다보니 사냥에 의존해 살다가 사냥마저 어렵게 되면, 이웃나라를 습격하여 해적질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규율이 엄격해야 했고,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말에 절대복종해야 했고, 전쟁에 지면 국민 모두가 지독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공동체의식 등이러한 전통이 게르만족의 문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 역시 바이킹의 잦은 습격으로 고통을 당하다가 역경을 딛고산업혁명에 성공, 원료 및 판매 시장확보 차원에서 부국강병책으로 해외 식민지를 확대해갔고, 프랑스는 기름지고 기후조건이 좋은 넓은 땅을 차지하다보니 일찍부터 부를 축적한 귀족들이 패권다툼 끝에 왕권이 확립되고 중앙집권화하여 세력을 넓혀갔고 영국과 패권다툼을 하며 해외식민지를 확대해 갔습니다. 독일에서는 북쪽 변방의 작은 나라 프러시아 재상 비스마르크가 철혈정책으로 19세기 후반에야 독일을 통일하고 보불전쟁을 통해 프랑스를 제압하고 유럽의 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후발주자로서 선발주자를 따라 잡자니 처절한 철혈정책과 과학기술 개발이 필요했던 것이고 여기에 엄격한 규율과 지도자에 대한 순종, 공동체 의식이 순기능을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바탕이 1 – 2차 대전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라인강의 기적을 가능케 했고, 엄청난 통일비용과 후유증으로 유럽의 병자가 되었다가, Agenda 2010 비전과 같은 정책수행으로 다시금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본도 독일국민성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디지털산업과 4차 산업혁명시대는 다를 것이라고 합니다. 엄격한 규율과 순종보다는 자유분방한 문화가 강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독일 및 일본보다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성이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여 우리민족의 강점을 살려 과감히 응전을 한다면 더 많은 기회의 창출과 발전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10월3일 독일통일로 열광한 국민들이 느낀 감격도 잠깐, 엄청난 통일비용 및 후유증으로 독일 역시 유럽의 병자로 전락해가고 있었습니다. 국가는 동독의 무너진 인프라를 재건하고, 서독기업들은 문을 닫은 동독기업들을 인수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시설은 낡고 노동생산성이 낮아 제품의 경쟁력 부재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으며, 서독국민들은 동독국민들과 사회보장비용을 나누고 통일연대세까지 추가로 내야만 했으며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높아만 갔습니다. 이런 와중에 특히 동독주민들의 요구사항은 많아져 장기호황과 독일통일을 이룩한 헬무트 콜 수상이 이끄는 보수기민당 정권이 선거에 저 슈뢰더 수상이 이끄는 좌파 사회당 정부가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당 정부가 집권하여 인기영합정책을 수행하다보니 경제는 더 어려워졌고 실업률은 더 높아질 뿐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자동차산업 등 제조업이 쇠퇴하게 된 것도 기업들이 국민들의 높아져가는 임금인상 및 사회보장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좌파 노동당 정권이 집권하여 제3의 노선이니 하면서 중도좌파 정책을 수행했지만 기업들의 경쟁력을 회복하는데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슈뢰더 수상이 이끄는 독일 사회당은 달랐습니다. 기업들의 사회보장비용을 줄여주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주는 Agenda 2010 정책을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선거승리를 도모했지만 독일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해 재선에 실패하였고, 메르켈 수상이 이끄는 보수기민당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사회당 정부이었기에 노조를 설득하여 Agenda 2010정책을 비전으로 제시할 수 있었고, Agenda 2010을 사회당 정부가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집권에 성공한 메르켈의보수기민당정권이 어어받아 13년째 Agenda 2010 정책을 수행하여 유럽의 병자인 독일경제가 재도약을 하였고 10퍼센트에 육박하던 실업률도4퍼센트이하로 떨어져 현재 독일경제는 더 좋을 수가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히틀러가 선동했듯이 독일사람들이 우수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원 4세기경 훈족에 쫓겨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고 사냥과 약탈에 능하여 로마가 쇠약해진 틈을 타 서로마제국을 멸망시켰으나 문화를 모르는 산적들처럼 로마문화유적을 마구 때려부수었고 약탈을 자행하여 영어로 Bandalism(Bandal: 게르만의 일족이름)하면 문화파괴주의를 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럽으로 대이동을 한 이후 신성로마제국을 이룩하기도 하지만 수백년 동안 수십개의 소규모 영주국으로 분할되어 있었고 30년 신구교 종교전쟁으로 인구가 반감하였고, 영국.프랑스의 위세에 눌러 유럽에서는 2 – 3류 국가로 전전긍긍하다가 1871년북부변방 프러시아(독일 영주국의 하나)의 비스마르크가 통일을 하고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야 유럽 열강대열에 합류할 만큼 대단한 나라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1 – 2차 세계대전에 패배하면서 쑥대밭이 되었다가 특히 미국의 필요에 의해 마쌸 플랜 등으로 라인강의 기적을이룩한 저력있는 민족인 것 만큼은 틀림없지만 처음부터 대단한 민족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역사학자 토인비가“인류의 역사란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고 했듯이 게르만 민족은 원래 북유럽의 춥고 음습한 지역에 자리를 잡아 농사도 어렵고목축도 어렵다보니 사냥에 의존해 살다가 사냥마저 어렵게 되면, 이웃나라를 습격하여 해적질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규율이 엄격해야 했고,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말에 절대복종해야 했고, 전쟁에 지면 국민 모두가 지독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공동체의식 등이러한 전통이 게르만족의 문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 역시 바이킹의 잦은 습격으로 고통을 당하다가 역경을 딛고산업혁명에 성공, 원료 및 판매 시장확보 차원에서 부국강병책으로 해외 식민지를 확대해갔고, 프랑스는 기름지고 기후조건이 좋은 넓은 땅을 차지하다보니 일찍부터 부를 축적한 귀족들이 패권다툼 끝에 왕권이 확립되고 중앙집권화하여 세력을 넓혀갔고 영국과 패권다툼을 하며 해외식민지를 확대해 갔습니다. 독일에서는 북쪽 변방의 작은 나라 프러시아 재상 비스마르크가 철혈정책으로 19세기 후반에야 독일을 통일하고 보불전쟁을 통해 프랑스를 제압하고 유럽의 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후발주자로서 선발주자를 따라 잡자니 처절한 철혈정책과 과학기술 개발이 필요했던 것이고 여기에 엄격한 규율과 지도자에 대한 순종, 공동체 의식이 순기능을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바탕이 1 – 2차 대전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라인강의 기적을 가능케 했고, 엄청난 통일비용과 후유증으로 유럽의 병자가 되었다가, Agenda 2010 비전과 같은 정책수행으로 다시금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본도 독일국민성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디지털산업과 4차 산업혁명시대는 다를 것이라고 합니다. 엄격한 규율과 순종보다는 자유분방한 문화가 강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독일 및 일본보다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성이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여 우리민족의 강점을 살려 과감히 응전을 한다면 더 많은 기회의 창출과 발전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