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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PS Pride GyeongBuk

April 2018 Vol 41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여성들이 '길거리 성희롱'을 중단하자며 피켓을 들고 법안 심사를 시작한 의회를 응원하고 있다. (사진출처 클라린)

"길거리 성희롱은 제발 그만!" 가벼운 신체 접촉에 관대한 아르헨티나

"아이고… 아이고… 사람들 많은 곳에서 민망하게 왜 저런대요" 환갑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 아르헨티나 여행길에 오른 한 한국인 여자 분이 시내버스를 탔다가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의 진한 애정행각을 보고 연거푸 쏟아낸 말이다. 당시 대학생이던 필자는 그냥 웃어 보였지만 이 여자 분은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90년대의 일이다.
아르헨티나 국민은 애정표현에 거리낌이 없다. 화창한 날씨의 유혹에 넘어가 공원에라도 나가보면 벤치에 앉아 꼭 껴안은 채 키스를 나누는 연인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보니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난처한 건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뿐이다. 예컨대 우리 같은 동양인 말이다.
아르헨티나 국민은 애정표현에 거리낌이 없다. 화창한 날씨의 유혹에 넘어가 공원에라도 나가보면 벤치에 앉아 꼭 껴안은 채 키스를 나누는 연인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보니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난처한 건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뿐이다. 예컨대 우리 같은 동양인 말이다.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중남미국가에선 처음 만난 남녀 사이에도 스스럼없이 볼키스를 나눈다. 서로 볼을 맞대면서 입으로 '쪽' 소리를 내는 인사법이다. 이때 남자가 인사를 나누는 상대 여성의 팔뚝이나 등에 가볍게 손을 얹는 걸 종종 보게 된다. 여성은 이런 행동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친밀감을 드러내는 자연스런 행동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고 보니 뻣뻣한 차렷 상태로 볼만 서로 갖다 댄다면 정말 어색한 자세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며 웃음이 나온다.
그렇다. 아르헨티나는 공개된 장소에서의 스킨십이나 인사하는 사람과의 가벼운 신체접촉에 비교적 관대한 나라다.

길거리 성희롱

흔히 남미에는 미녀가 많다고 한다. 미스 유니버스를 여럿 배출한 베네수엘라는 '미녀 천국'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길거리 미녀가 많은 남미국가를 꼽으라면 단연 아르헨티나다. 매년 관광과 여행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사이트나 잡지에서 "여행 중 길에서 가장 많은 미녀를 본 도시를 꼽으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하면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언제나 선두다툼을 벌인다.
미녀들은 길에서 곤욕스런 일을 자주 겪는다. 이른바 캣콜링(catcalling)이다. 스페인어로는 acoso callejero라고 한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길거리 성희롱'이다. 캣콜링은 길을 걷는 여성에게 낯선 남성이 던지는 성희롱 발언이나 행동이다. 휘파람을 불거나 대놓고 성적 발언을 쏟아내는 걸 말한다. 운전을 하다가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는 경우도 있다. 침묵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하지 않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미녀에 시선을 꽂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다. 지긋이 나이가 든 할아버지까지 뒤를 돌아보며 미녀가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동양문화에 익숙한 우리로선 그런 남자들을 보는 게 오히려 민망할 정도다. "아무리 예뻐도 살짝살짝 눈치껏 훔쳐볼 일이지 생면부지 여자를 저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보면 어떡해…"라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분노를 느낀다" Vs. "즐거워하더라"

캣콜링을 당하는 여성들의 기분은 어떨까. 스킨십에 관대한 아르헨티나 여성이지만 캣콜링은 싫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아르헨티나의 '인터아메리카나 오픈 대학'은 최근 캣콜링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선 여성 응답자의 85%가 '길을 걷다가 휘파람이나 경적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72%는 '길에서 낯선 남자에게 신체에 대한 코멘트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최소한 10명 중 7명은 캣콜링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캣콜링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이었다. 캣콜링을 경험한 여성 중 98%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답했다. 분노를 느꼈다는 여성이 35%로 가장 많았고, 공포와 불안을 느꼈다고 답한 여성도 26%나 됐다. '혐오감을 갖게 됐다(25%)', '괴로웠다(11%)'고 답한 여성도 많았다.
공공장소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당당히 스킨십을 나누는, 인사를 나눌 땐 친밀감의 표시로 가벼운 신체접촉에 관대한 아르헨티나 여성이지만 낯선 남자의 캣콜링을 정말이지 싫다는 얘기다.
그럼 남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설문에서 '캣콜링을 당한 여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남성 응답자의 45%는 '여성들이 즐거워하는 것 같더라'고 답했다. 我田引水(아전인수)도 이 정도면 심각하다. '그냥 무시하더라'고 답한 남자는 29%였다. 여성들의 심정을 전혀 이해 못하는 또 다른 부류의 답변이다. '캣콜링을 경험한 여성이 불쾌한 표정을 짓더라'고 답한 남자는 10%에 불과했다. '무시하면서도 공포감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 답한 비율은 4%, '(맞받아서) 욕을 하더라'고 답한 비율은 2%였다.
답변을 보면 캣콜링을 당하는 여성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남자는 적은 것 같다. 하지만 '캣콜링을 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7%에 그친 걸 보면 과연 남자들이 여성들의 불쾌감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의심된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만한 일이라는 생각에 '난 절대 그런 적 없어요'라고 정색한 남자가 많았다는 느낌일 뿐이다.

아르헨티나 의회 "캣콜링 근절하자"

아르헨티나 의회에 여성들을 캣콜링에서 보호하자는 취지의 법안이 발의됐다. 연방하원 형법위원회가 최근 재심사를 시작한 법안엔 부적절한 제스처나 발언, 신체접촉 등으로 타인의 존엄성이나 자존감에 상처를 준 경우 벌금형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벌금은 최저 3000페소에서 최고 3만 페소까지다. 원화로 환산하면 16만1000~161만원 정도다. 피해자가 18세 미만 미성년자이거나 가해자가 공무원 또는 경찰 등 치안기관 종사자일 경우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 유죄가 확정되면 가해자는 벌금과 함께 성범죄 예방을 위한 성교육도 받아야 한다.
법안은 원래 형법위원회 심사를 마치고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지만 위원회가 재심사를 결정했다. 캣콜링의 정의 등 보다 섬세하고 정밀하게 손봐야 할 내용이 많다는 판단에서다. 형법위원장 가브리엘 부르고스 의원은 "캣콜링이 지나치게 포괄적인 개념인 데다 피해자의 증거 확보도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보다 꼼꼼하게 법안을 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수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캣콜링의 경계선이 애매모호해 입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제기되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이런 법안이 발의됐다는 것 자체가 진일보한 일로 보인다.

박수치는 여성들

여성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인식의 전환이 반갑다는 게 여성들의 반응이다. 4년째 우리 회사에 근무하는 미혼의 여성에 물었더니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성희롱의 형태가 바로 캣콜링"이라면서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국가가 이런 행태를 근절하겠다고 나선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필자의 한 여성 대학동창은 "성추행 발언과 소위 '작업 멘트'를 구분해야 한다"면서 "후자는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지만 전자는 절대 용납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마치 아르헨티나의 대표적 길거리 문화처럼 흔히 볼 수 있었던 캣콜링이 마침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진짜 반가운 일이다.

경북pride상품 아르헨티나 해외시장 조사원
손영식